일제강점기 잔재인 공창제 문제의식을 담은 ‘화려한 지옥’
남성 중심의 문화예술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여성 작가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던 가곡 ‘그네’의 일부분이다. 귀에 익은 이 노래의 작사가가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소설가 김말봉이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곡을 듣는 순간,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소설가 김말봉을 이렇게 가깝게 느끼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소설가 김말봉은 어떤 사람일까? 김말봉은 1930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30편이 넘는 신문소설을 내놓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소설가이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찔레꽃’이 인기를 얻으며 멜로드라마의 원조가 된 여성 작가이기도 하다. 김말봉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어 절필하게 된다. 1948년 해방 이후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일제 식민지의 잔재인 공창제 폐지 운동을 펼치는 등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김말봉의 작품은, 오늘날 재평가되기까지 남녀의 애정을 그린 통속소설로만 평가됐다. 음악극‘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살아있는 문학이란 대중 독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김말봉의 신념과 주체적인 여성상이 녹아 있는 작품의 진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김말봉의 작품 중 세 편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 벽장에 갇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인 ‘고행’과 자본주의의 절대 권력으로 상징되는 은행장 ‘조만호’를 중심으로, 청춘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그린 자유연애소설 ‘찔레꽃’, 기생 오채옥의 수난사를 통해 공창 폐지의 필요성을 전하는 ‘화려한 지옥’을 연작으로 각색했다.1930년대의 무성영화의 변사 같기도 하고, 코미디에 등장하는 만담꾼 같기도 한 두 사람이 등장하며 극은 시작된다. 두 사람은 ‘김말봉을 아는 자’와 ‘김말봉을 모르는 자’로 자신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오늘날 멜로 드라마의 전형성을 만들어낸 소설가 김말봉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개성 넘치는 작품 속으로 관객들을 이끌어 가는 안내자가 된다. 국악을 재해석하는 퓨전 밴드 ‘더튠’은 1930년대의 동요, 만요, 신민요, 가요 등을 라이브로 들려준다.
무엇보다 세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장되고 코믹한 연기로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고행’과 ‘찔레꽃’에서는 청순하고 가련한 여성, 가난하지만 능력 있는 남성, 엇갈린 운명, 한 여자를 동시에 좋아하게 된 아버지와 아들, 우연을 가장한 인연 등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드라마의 공식들을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김말봉의 작품인 ‘화려한 지옥’에서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여성을 남성의 성 노리개로 만들어 버린 공창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관람의 첫 번째 즐거움은 재미와 감동, 더 나아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는 데 있다. 멜로 드라마의 원조인 여성 작가의 당찬 기백을 보게 된 것은 두 번째 즐거움이다. 남성 중심의 근현대 문화 예술사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소설가 김말봉을 만나게 된 것은 세 번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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