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날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학교에 안 가도 되니 마냥 신났던 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우주선이
날짜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날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학교에 안 가도 되니 마냥 신났던 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던 집으로 향했다.
로켓의 발사부터 분리, 궤도 진입, 도착까지의 과정을 그림을 그려가며 아이에게 찬찬히 설명했다. 아버지 옆에 앉아 열심히 듣던 아이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동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내팽개치고 모두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어떤 인생은 하나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또 어떤 인생의 과업은 하나의 장면으로 다 설명된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던 아이는 자라서 연세대 물리학과에 입학해 핵물리학으로 석사를 밟은 뒤 카이스트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에 빗대면, 번역은 ‘국8영2’ 또는 ‘국9영1’입니다. 영어 실력보다 국어 실력이죠.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원문을 가공해 우리말로 다시 쓰는 능력이 중요합니다.”그가 문장에 들이는 노력은 가히 원석을 가공해 보석으로 만드는 세공사 수준이다. 영어의 주어는 대체로 ‘나’이지만 한국어가 ‘나’로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우리말에 맞게 주어도 바꾸고 문장 배열도 바꾼다. 또 한국어 문장은 대개 ‘∼다’라고 끝나는데, 모든 문장이 ‘∼다’라고 끝나면 지루하기 때문에, 문장을 대화체, 의문문 등으로 다양하게 변용하고 유행어와 유머, 사자성어 등도 동원해 이해도를 높인다.
“학창시절에 엉망인 번역본 때문에 이해가 안 가서 답답할 때가 많았어요. 그때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 공부했다면 시간을 얼마나 절약했을까 싶죠. 모국어로 공부하는 영어권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아껴주고 싶은 마음에 번역을 합니다.” 그가 번역에 진심인 이유다.7년 전부터는 강단에서 은퇴하고 번역과 저술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권짜리 ‘나의 첫 과학책’ 시리즈 등을 펴내는 등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집필 활동에 관심이 많다.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 일단 눈을 뜨면 당구나 기타를 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맑아진 영혼으로 번역에 집중한 뒤에는 프라모델과 레고 등을 만들거나 피아노를 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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