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았더라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l 남해의봄날 l 1만9500원 “사각의 링에선 복서래 달아날 곳이 없구, 사각의 원고지에선 문인이래 숨을 곳이 없구, 사각의 도화지에선 화가래 물러날 곳이 없다.” 말 적던 이가 박수까지 쳐대며 구변을 부린다. “시인을 견자
소설가 김탁환의 새 장편 주인공인 통영 시절의 이중섭. 김 작가는 19일 한겨레에 “평안남도 사투리를 전형적으로 구사하는 인물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사진은 이중섭이 통영 녹음다방에서 유강열·장윤성·전혁림과 함께 ‘서양화 4인전’을 열었을 때 모습. 남해의봄날 제공“사각의 링에선 복서래 달아날 곳이 없구, 사각의 원고지에선 문인이래 숨을 곳이 없구, 사각의 도화지에선 화가래 물러날 곳이 없다.” 말 적던 이가 박수까지 쳐대며 구변을 부린다. “시인을 견자 즉 보는 사람이라 하디. 무슨것을 봔? 평범한 사람은 아니 보는 걸 본다 이거이야. 기렇게 본 걸, 글로 바꾸문 시인이구 그림으로 바꾸문 화가! 시인은 글 짓는 화가구,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다 이 말입네….”“감각이래 논리를 동반한다”기까지, 일장연설을 쏟는 이는 다름 아닌 화가 이중섭이다. 눌변으로 더 알려진 비운의 화가, 그러다 죽어서야 이르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 생애는 사후 풍요로워진다. 평전만 3종이다. 2016년 6월 사후 최초 열린 대규모 회고전 제목은 ‘이중섭, 백년의 신화’였다. 남은 틈이라면 육성이고 영상일 터, 중섭의 말의 부활이 지닌 매력이고 그의 말이 가장 잘 되살아날 곳, 바로 통영으로 독자가 안내되는 이유겠다. 이제 소설이다. 중섭이 통영에 머문 시기는 1953년 11월부터 1954년 6월이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 공예가 유강열 덕분이다. 도쿄 유학파로 원산에서 중섭에게 신세 지고 깊이 교우했다. 별명이 ‘덤베’일 만큼 진취적이다. 유강렬은 일찌감치 통영에 터 잡고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를 차렸다. 가르치길 꺼리는 중섭에게 강사직을 맡기고, 아틀리에와 화구를 제공해 창작에 몰두하도록 돕는 장본인이다.중섭의 말은 시도 살린다. 중섭의 시에 대한 이해나 탐독은 낯선 사실이 아니다. 외던 시가 많아 “누이 허난설헌의 시를 앉은 자리에서 술술 다 외웠다는 허균의 환생이란 놀림까지 당”하곤 했다. 나아가 작중의 시는 중섭의 처지이자 의식의 흐름이요, 예술적 양식으로 발현한다. 그가 프랑스어도 공부하며 동경한 파리의 랭보, 폴 발레리, 개별적으로 가까운 구상, 양명문, 통영에서 걸목이 되어준 유치환, 김춘수 등은 실체와 허구의 경계를 허물며 중섭을 입체화한다.
통영에서 완성된 작품만 100점이 넘는다. 그중 중섭의 심리, 예술적 지향, 하물며 가족을 위해 돈 벌어야 한다는 현실 과제조차 아우르는 건 무엇보다 ‘소’다. 오산고보 때 미술전 출품작도 이 땅의 황소 아니었던가. 작품 ‘들소’ 이후 ‘싸우는 소’ ‘붉은 소’ 등 숱한 ‘소’가 통영에서 탄생하고, 마침내 서울에서의 ‘흰 소’로 이어진다. 소설대로라면 “오롯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 곳이 바로 통영이다. 특히 가상의 제자 남대일을 상대하여 가르치는 형상은, 중섭이 중섭을 가르치고 말하고, 다그치고 북돋워 중섭을 성취해가는 도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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