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이후 놀란의 또 한번의 걸작인데, 놀란이야말로 세계 영화계의 프로메테우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놀란 감독, 세계 영화계의 프로메테우스 원작에 대한 해석 능력이 뛰어 났다는 것, 쉽게 말해 원작을 줄이고 늘이며, 몇 개의 에피소드를 합치거나 한 개를 몇 개로 나누거나 하는 과정에서 그럴듯한 윤색으로 원작을 재창작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해냈다는 것은 몇 가지 대목에서 추출돼 나온다. 이쯤에서 오펜하이머와 당대를 같이 했던 에드거 로렌스 닥터로우의 분석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 나아가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욱더 나아가 카이 버드&마틴 셔윈의 1천페이지 짜리 평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놀라운 작품 ‘오펜하이머’는 영화를 만들 때,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이 있을 때, 감독이 지니고 있는 원작 해석 능력과 응용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다. 이번 영화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마치 스스로가 이론물리학의 태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된 것처럼 영화에 과학적 창의력이란 창의력을 몽땅 쏟아 부어서 만든 느낌을 준다. 놀란은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25년간 공들여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완벽하게 재구성하고,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영화를 완성했다.
오펜하이머는 이론 물리학 뿐만 아니라 언어 면에서도 천재적이었던 바 심지어 산스크리트어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에서는 친구이자 1941년 핵자기공명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와 기차를 타고 학회를 가는 장면에서 언급시키거나 연인인 진 태트록이 그와 섹스를 나누다가 책장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시집을 갖고 와서는 그에게 그걸 읽게 하고는 그 발음을 들으며 다시 섹스를 계속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이때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화두이자 적은 파시스트였다. 프랑코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이후 나치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향하게 된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에게 대항할 무기로 공산주의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 같은 이론 물리학자도 그래서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됐고, 이때의 행동들이 평생 그의 뒷덜미를 잡고 그의 인생을 옥죄게 된다. 그 과정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된 테마이기도 하다. 미국의 반공 이데올로기, 냉전의 국제 정치상황, 극우 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이 일으킨 광풍의 시대가 이 천재에 대해 어떻게 마녀사냥을 벌였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건 꼭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역사 속 어디에서든 툭하면 벌어지는 일임을 역설한다.공산당원이었던 적은 없으나 공산주의 사상에 꽤나 심취했던 오펜하이머가 국가에의 헌신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41년의 진주만 침공이다.
지나친 비극은 곧바로 영화나 그림, 음악, 문학으로 표현되기 힘들다. 사람들의 심리적 내성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9년은 서서히 상처를 씻어내기 시작한 때이다. 프랑스 알랭 레네의 명불허전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이 만들어졌던 때도 1959년이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것이 1945년 8월 6일. 14년이 지나서야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셈이다. 프랑스 여배우 엘르는 히로시마에서 일본인 건축가 루이를 만나 짧은 사랑에 빠진다. 나치 점령 시절 독일군을 사랑했던 엘르는 전후 그의 처형 과정을 목격했던 상처를 지녔고 그런 아픔을 히로시마에 와서 똑같이 느낀다. 그러나 두 연인은 정신적 상흔을 딛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의 아픔은 결코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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