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지식인은 책으로 '나'와 세상을 바꿔나갔다
이덕무의 문장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집이 몹시 누추하여 벽에 언 얼음이 뺨을 비추고, 방구들의 그을음 때문에 눈이 시었다." 가난했지만 머릿속에는 수만 권의 책이 떠돌았다. 책은 존재를 증명하고 삶을 치유하는 탕약이었다. 그의 책 읽기가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유희에 그쳤다면, 이덕무의 독서는 역사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덕무는 가난 속에서도 책을 읽어 규장각 시험에 1등으로 뽑혔다. 정조는 이덕무를 매우 아껴 하사품을 500번 넘게 내렸다고 전해진다.쌀도 보리도 없어 사흘을 굶자 이덕무는 결심했다. 가장 값나가는 '맹자'를 팔기로 한 것. 가난과 책, 책과 가난이 항상 맞물리는 현실에 절망한 그는 거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붓을 들었으니, 이런 문장이 남았다.이 책이 언급하는 조선의 또 다른 유명 탐독가는 세종이다.병이 난 충녕이 책 읽기를 그치지 않자 태종은 명했다."충녕의 책을 모두 거두어 오라." 그러나 충녕의 방 병풍 뒤에 '구소수간'이란 책이 실수로 남겨졌다. 세종은 그 책을 1100번 넘게 읽었다. 수치가 과장됐을 순 있겠지만 세종의 '책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임금에 오른 세종은 급기야 '독서휴가제'를 만들었다. 바쁜 업무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신하들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 제도를 '사가독서'라 한다. 사가독서는 국가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독서였다. 선발제였고 보통 6명 남짓이 뽑혔다. 사가독서제는 영조 때까지 300년쯤 이어졌다. 48회에 걸쳐 320명의 학자들이 '책 읽는 휴가'를 다녀왔다. 요즘에는 꿈같은 얘기겠지만. 충무공 이순신도 '책 읽는 무사'였다. 일단 온 세계가 몰락하는 긴박한 와중에도 일기 쓰기를 거르지 않았다는 사실부터 놀랍지 않은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충무공은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고 전해진다.한 인간의 독서가 한 세계의 존망을 결정했다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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