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이라도 더”···‘선 긋기’ 멈추고 눈감은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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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까지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했던 박서보 화백이 붓을 놓았다. ...

생의 마지막까지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했던 박서보 화백이 붓을 놓았다. ‘묘법’ 연작으로 유명한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지난 2월 박 화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접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리며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투병 중에서도 그림 작업을 지속했지만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선 긋기’를 멈추고 말았다.

박 화백은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길을 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1956년 원로작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상작이 안배되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환멸을 느끼고 국전에 반대하는 독립전시를 감행한 ‘반국전 선언’의 주역이었으며, 1957년 국내 최초의 앵포르멜 작가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각인됐다.‘단색화’는 박서보와 동의어다. 1970년대부터 단색화의 기수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여왔다. 1967년 시작한 묘법 작업은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긋는 전기 묘법시대를 지나 한지를 풀어 물감을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뒤 도구를 이용해 긋거나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후기 묘법시대, 2000년대 들어 자연의 생생한 색을 쓴 유채색 작업까지 변화해왔다.박 화백은 2001년 칠순을 맞아 화집을 발간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하루 14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하며 그림을 통해 ‘수신’했으며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변화를 거듭했다.

박 화백은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 일본 도쿄의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1년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박 화백의 작품을 이용한 핸드백을 내놓기도 했다. 박 화백의 그림은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작가별 낙찰 총액 3위에 올랐다.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박 화백만큼 강도 높게 비판받은 작가도 드물다. 1970년대 군사독재 상황에서 박 화백을 필두로 한 단색화 화가들이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군사독재 시절 민중미술과 순수미술의 대립 양상이 펼쳐지면서 ‘순수미술’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박서보 화백에 대한 프레임이 씌워진 것”이라며 “이념적으로 대립했던 한국 미술계의 일종의 상처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화백은 후학 양성에 힘쓴 교육자이자, 미술 행정의 기초를 닦은 미술행정가이기도 했다. 1997년까지 모교인 홍익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홍익대 미대 학장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석류장과 옥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고 제64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박 화백의 별세 소식에 미술계에선 추모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단색화를 해외 미술계에 알리는 데 앞장선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회장은 “박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었다.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고 애도했다. 1992년 박 화백의 전시를 처음 연 이래 14번에 걸쳐 가장 많은 개인전을 진행한 부산의 조현화랑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많은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작가”라며 “외롭고 고단했던 시간과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고자 했던 투쟁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권태도 모르고 쉴 줄도 모르는 88세 화가의 붓···국립현대 ‘박서보 회고전’https://www.kh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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