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물·바퀴벌레…기숙사를 탈출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최지수씨‘천국’에 들어섰다는 기쁨은 잠시‘지...
전세사기 피해당사자의 시각으로 전세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저자 최지수씨가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최지수씨를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천안의 한 다가구주택에 보증금 5800만원짜리 전세로 들어갔다. 근저당 설정 당시 최우선 변제금 기준보다 800만원이 많았다.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전세사기특별법이 통과되기 두 달 전 경매가 끝나버린 탓에 최씨는 ‘안타깝게도’ 보증금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그 집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전세피해확인서를 발급받아 3개월간 긴급생계지원금을 수령했다.”
은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이 평범한 32세 청년이었던 최씨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날부터 시청, 법원, 경찰서, 주택도시보증공사, 주거복지재단을 오갔지만 정부가 발표한 지원책들은 번번이 그를 비껴갔다. 절망은 깊어졌고 인류애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삶에 대한 기대를,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내 삶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끝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며 악착같이 살아남겠노라 다짐한다. 파일럿 훈련비를 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다음달 원양상선을 탈 예정이라는 그를 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지난 2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 ‘무기한 연장’을 발표하는 합동브리핑 자리에 을 들고나왔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며 “정책의 기초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묻자 최씨는 한참 동안 말을 골랐다.
서울에 살았던 최씨가 천안공단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 취직한 건 파일럿 훈련비용 1억원을 벌기 위해서였다. 회사 기숙사가 제공되니 주거비를 아낄 수 있을 거라 봤다. 하지만 퇴근을 해도 회사 사람과 방을 함께 쓰다 보니 퇴근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녹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집주인 행세를 하는 바퀴벌레를 보며 생각했다. 사람답게 살려면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이건 아니다 싶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30만원의 월세가 부담 됐던 최씨도 많은 청년이 그러듯 전세로 눈을 돌렸다. 당시 ‘리젠트빌라 1004호’를 소개한 중개인은 “이곳에 사는 매일이 천국 같을 것”이라고 했다. 최씨 역시 위험이 아예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엔 ‘사람답게 살 만한 집’이 부족한 현실이 있다. “20곳 정도 집을 봤고 그중 5곳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런 집은 금방 나가더라고요.
하지만 정부의 경매 유예 조치는 미추홀구에 한정됐다. 금감원은 “권리관계가 이미 확정돼 개입이 어렵다”면서 “안타까운 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매 우선매수권을 보장한 전세사기특별법이 통과됐지만 경매가 모두 끝난 최씨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전세를 들어가느니 차라리 집을 사고 싶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어요. 주택구입대출은 만 30세 이하만 가능하거든요. 저리대출을 제외하면 사실상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었어요. 긴급주거는 너무 멀었고 월세 지원은 3분의 1만 가능해 의미가 없었어요. 제가 받은 정부 대책은 긴급생계지원금이 유일한데 소득 150만원 이하만 가능한 데다 이마저도 예산 부족으로 두 달 만에 마감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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