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집을 하루 비우면서 느끼는 단상 1박2일 동창 아내 윷놀이 진보초등학교 이혁진 기자
아내가 사골곰탕, 김치찌개, 멸치볶음 등 먹을 것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오늘따라 주방에 오래 머무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이어 나를 불러 냉장고의 여러 밑반찬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2주 전 달력에 표시한 아내 모임 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1박 2일 동창모임이다.집을 잠시 비울 일이 생기면 아내는 내가 먹을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있다. 하루 이상 멀리 여행갈 때는 가깃수가 더 늘어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누차 말하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어떨 때는 먹지 않아 음식이 상할 때도 있다. 어린아이처럼 만들어 놓은 음식도 못 먹는다며 아내는 전전긍긍한다.
아내는 집을 나설 때까지 채근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내가 음식을 챙겨 먹는 것도 아니다.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는 사람들은 집밥을 먹지 않고 사 먹는다고 하는데 난 그런 것도 아니다.지난 주말 오전 아내는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초등학교 절친들이다. 다들 할머니가 된 친구 10여 명이 밤새 수다를 즐기는데 이런 연례행사가 벌써 20년이 넘었다.이런 모임이 지겨울 법한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 여행 가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한다. 샘물처럼 솟는 이야기와 눈만 마주쳐도 통하는 사이를 자랑하기 바쁘다.약간의 내기를 거는데 모두가 환영하는 시간이다. 윷놀이를 오래하면 얼굴 붉힐 일 있는데 그런 법은 결코 없단다. 해마다 윷놀이 기구를 챙겨 가져오는 친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나 홀로서기, 아내를 이해하는 것부터젊을 때와 달리 나는 모임을 줄이거나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는 편인데 아내는 수 십년을 만나는 모임이 여럿 있다. 비법이 있는지 정말 진득하게 오래 만나고 우정이 깊다.
이제야 아내 걱정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먹을 것을 바리바리 준비한 것은 내 건강을 위한 것이며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키는 '양면전략'이다. 매사 이기적인 나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아내는 친구모임에 다녀와"다들 저녁까지 먹고 가자는데 자기만 먼저 왔다"는 말을 자주 한다. '립서비스' 같은 빈말에도 이제는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해서 아내가 돌아오면 무조건"고생 많았다"는 말부터 건넬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야겠다.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우리 나이가 되면 혼자 노는 법, 먹는 법 등 를 강조한다. 외로움과 무료함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아내의 치성은 어쩌면 날 미리 교육하는 건지 모른다."내가 없더라도 밥 잘 챙겨 먹고 있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도 게재할 예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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