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6] 큐레이션 06 엄마와 엄마의 엄마,
갚지 못한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성으로 존재하는 것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고만 부채는 청산할 도리도 없이 깊은 곳에 쌓인다. 그동안 받아온 부모의 사랑과 헌신 같은 것. 그중에서도 낳고 기르는 일의 8할은 책임졌을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채무는 어떤 방식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무게를 가진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 것, 하루빨리 제 몫을 하는 성인이 되어 쥐꼬리만 한 그 빚의 일부를 상환하는 것이다.
영화 속 가영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영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 7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시커먼 남자애들이랑 밤늦게까지 어울려 다니고,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뚱뚱하고 능력 없는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 엄마는 그런 가영의 인생에 대해 사사건건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간섭해 온다. 가영 또한 20대 중반이 훌쩍 넘어서까지 통금 시간을 정하고 어길 시엔 벌금까지 요구하는 엄마와의 관계가 편할 리 없다. 그렇게 엄마는 점점 극혐인 대상이 되어간다.누군가에 대한 걱정과 핀잔에는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놓여 있을 경우가 많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문구로 그 문제를 표면화했을 때 상대가 받게 될 상처를 최대한 미루고자 하는 이유다. 다른 표현으로라도 그 문제를 전달하고는 싶고, 자신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괜히 다른 사소한 일들로 꼬투리를 잡게 된다.
두 인물의 충돌을 암시하는 텍스트는 이미 사전에 충분히 마련되어 왔다. 엄마는 이 자리에서 딸에 대해 지금껏 가져왔던 걱정과 염려, 근심을 단번에 쏟아낸다. 무엇보다 이런 비 좀 내린다고 주저앉아 있는 게 무슨 감독이냐며 지금이라도 때려치우고 취업 준비하면서 사람 구실하라는 말은 지금의 이 모진 말들이 단순히 가영의 뜻이나 재능을 폄하하거나 꺾으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만든다. 영화감독이 될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이렇게 사소한 장애물 앞에서 쉽게 주저앉는 듯 보이는 모습이 안타깝고 답답했던 탓이다. 가영은 눈물을 쏟는다. 엄마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뿐이지, 응원과 지지까지 철회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앞서 빚이라는 딱딱한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단일한 방향으로밖에 흐를 수 없는 이 관계조차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은 역시 가족이라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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