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찾은 대전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창의학습관 화장실에는 ‘24시간 자살예방상담’을 제공하는 ‘카이스트 생명의...
23일 찾은 대전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화장실에는 ‘24시간 자살예방상담’을 제공하는 ‘카이스트 생명의 전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011년 ‘영재들의 학교’라 불리는 카이스트에서는 학생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랐다. 엄격한 상대평가 제도 시행으로 중간고사를 망친 학생들은 장학금 유지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휴학을 했고 이내 비극으로 이어졌다.
십여년 전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니, 건물 1층 로비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카이스트가 처음 선포한 ‘실패 주간’을 맞아, 학생들이 직접 찍어낸 ‘실패의 순간’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형 펼침막에는 ‘실패의 순간을 포착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과잠’을 입은 19학번 정혜인씨가 학생들의 실패 순간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 속에는 모니터에 뜬 ‘연구실 미팅 일정’ 알람과 함께 영어 논문 모습이 담겨 있고, “미팅 한시간 전인데 논문을 다 이해하지 못했고, 시간을 더 들여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적혀 있었다. 정씨는 절망감이 묻어나는 사진을 응시하며 “친구들의 실패담을 보면 내 경험이 떠올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실패 주간의 첫 행사는 학생들이 ‘창학’이라 부르며 즐겨 찾는 창의학습관 1층에서 열린 ‘실패 사진전’이다. ‘괴짜 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이광형 총장이 2021년 부임한 뒤 만든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기획했다. 다음달 1일에는 학생들이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가 열린다. 2011년 잇단 비극에도 “세상에 공짜는 없고 경쟁은 불가피하다”며 무한경쟁을 부추겼던 서남표 전 총장 시절과 다른 분위기에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장은 한겨레를 만나 “올해 처음 도전해보는 행사인데, 생각보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서 놀랐다 ”며 “이공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정답을 하나로 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를 포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을 갖게 하기 위해 강연 100번보다는 유치해 보 여도 학생들끼리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사진과 사연을 직접 수집한 실패연구소 안혜정 교수는 개회식에서 “카이스트에 갔으면 이미 성공한 거 아닌가 생각하곤 하지만, 학생들 속사정은 다르다”며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친구들은 파릇파릇한 것 같은데 자신만 시들어가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나에게 기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과 ‘나는 일반고 출신인데’라며 위축되고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사진전이 열린 창의학습관 앞을 오가는 학생들은 행사장으로 발길을 옮기며 실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학생은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던 시절에 비해 최근에는 상대평가 제도의 운용이 덜 엄격해져 경쟁적인 분위기가 덜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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