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떠나보낸 여자가 군산으로 떠난 이유는? 영화 박가영 이승찬 서울독립영화제 겨울에만나 조영준 기자
누군가의 존재를 모두 지워내는 데는 얼마나의 시간이 필요할까? 아니, 자신에게 남겨진 타인의 흔적을 모두 지워낸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나는 조금 회의적이다.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흔적의 무게를 최대한 털어내는 일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에게 남겨진 삶을 다시 걸어가는 것이다. 이따금씩 그 기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하고 고개를 내미는 것은 역시 우리의 신체 어딘가에 가느다랗게 매달려 있던 그 흔적들이 가벼운 먼지처럼 떠오르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엇은 잊는다는 것은 지금 당장 떠올리는 기억 속 공간으로부터 잠시 모습을 감추도록 하는 것일 뿐 그 사실이 없었던 때의 기억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혜원은 1년 전 동생 지원을 떠나보냈다. 바다에서 누군가를 구하려다 죽었다고 한다. 이만하면 그 기억을 조금은 떨쳐낼 법도 하지만 아직 동생의 기억에서 쉽게 멀어지지 못한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도 미뤄둔 채다. 지원이 다니던 회사에서 물건을 정리해 달라는 연락이 계속해 걸려오지만 그냥 전부 버려달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그 시간을 유예하기만 한다. 한 가지 다행인 일은 혜원의 곁에 남자 친구 재훈이 있다는 사실이다. 혜원이 동생의 장례식날을 떠올리며 그가 다니던 직장이 있는 군산으로 향하는 날,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영화의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혜원이 놓여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혜원이라는 인물 자체보다는 혜원이 느끼는 감정에 가깝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후라 격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되거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관통하는 경험은 아니지만 기저에 계속해서 흐르고 있던 감정이 흐릿함과 선명함 사이에서 오고 가는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통해 전달된다.
혜원과 그의 남자 친구인 재훈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혜원에게 있어 재훈은 밀어내는 존재이고, 재훈은 그런 혜원을 끊임없이 품고자 하는 인물인데, 반대로 말하면 혜원은 재훈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고 재훈은 그런 혜원을 이해하고자 한다. 직전에 언급했던 혜원과 동생 지원 역시 마찬가지. 혜원은 지원을 한없이 보살피고자 했고, 지원은 그런 혜원을 밀어내고자 한다. 문제는 이 관계의 장력 구조가 서로 암묵의 합의, 혹은 일방적인 이해가 가능할 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극 중 인물인 혜원과 재훈, 유진과 지원은 지금 기재된 순서에 따라 땅과 하늘을 잇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에서는 유난히 하강하는 이미지가 많았다. 장례식을 떠올리던 장면에서는 유골함을 들고 있는 혜원의 뒤로 계단을 내려오는 가족들이 있었고, 영화 속에서 수차례 떨어지던 눈의 모습이 또 그랬다. 상실을 무게를 안고 제일 땅 가까이에 놓여 있는 혜원, 그런 혜원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대하며 딛고 오를 수 있는 재훈, 혜원과 지원 사이에서 누나가 모르는 동생의 모습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유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지원. 내게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보인다. 혼자서는 조금도 떨쳐내지 못했던 대상의 존재를, 영화의 처음에서는 재훈의 따뜻한 온기로 또 후반에서는 유진과의 짧은 동행과 해프닝으로 조금은 더 가까운 곳까지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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