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조문객, 문소리의 추도...국가 대신 딸 지킨 사람들 이태원 안지호 참사 희생자 소중한 기자
고 안지호씨의 장례식장. 간신히 딸의 빈소를 지키던 엄마의 눈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그는 누구보다 슬픈 눈으로 영정을 바라봤다. 애써 기억을 더듬었지만 엄마는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지호씨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친구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는 지호씨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얼마 후 친구는 외국인들의 심폐소생술로 깨어났지만 더 이상 지호씨를 만날 수 없었다. 이때가 오후 10시 30분이었다. 지금도 친구는 지호씨 묘를 찾아"보고 싶다"는 편지를 남기고 있다. 중학교 땐 시험 점수를 너무 잘 받아와 저를 놀라게 했어요. 물론 고등학교에 가선 중학교 때 놀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긴 했지만요. 고등학생 땐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봉사활동을 해온 지호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줄넘기 대회에도 열심히 출전했는데 고3 땐 후배들을 이끌며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지호씨 빈소는 친구들로도 가득 찼다. 엄마는 친구들에게 들은 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아빠 또한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딸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한 번 안아드려도 될까요"라고 말하던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체육관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가족은 우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10분 간격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이어졌는데 어느 순간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용산경찰서 형사과"라고 소속을 밝힌 그는 지호씨 휴대폰이"분실물로 습득됐다"고 전했다. 휴대전화 상태를 묻는 질문에 경찰이"멀쩡하다"고 답하자 아빠는 내심 기대를 품었다."◯◯병원인가요? 제 딸이 이태원에 갔다 실종됐는데요.""그 이름은 없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택시비를 내라'고 했어요. 딸이 '무슨 택시비를 내?'라고 그러기에 '옆에서 수다를 떨라'고 했죠. 지호의 수다가 차비였어요. 차 안에서 지호가 틀어주던 BTS 노래도 떠올라요. 제가 아이돌도 하나도 모르고 기억력도 나쁜데 BTS만큼은 알아요. 지호가 아미였거든요. 집 컴퓨터가 느리다며 PC방에 가 콘서트도 예매하던 아이였어요." 엄마·아빠는 딸이 대학 수업 중 과제로 썼다는 유서를"공유하고 싶다"고 했다."다들 이기적으로 남은 인생 즐기고 나 보러 와. 기다리고 있을게. 어떤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줘." 지호씨 친구가 해당 수업의 교수에게 부탁해 받은 유서의 마지막 문구다. 엄마는"우리 딸은 항상 저의 삶을 응원해줬다"며"지호는 남겨진 가족들이 삶을 버리지 않고 행복을 누리길 바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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