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며 동네 산책하다 새롭게 발견한 것들
평소 동네 이곳저곳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콘크리트 아파트 사이를 벗어나 벽돌집을 지나 한적한 산책로까지 걷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도 좋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이색 간판을 유리창 너머 내부의 분위기와 연관을 지어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렇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얼마 전 운동하다 종아리 근육파열로 다리를 다쳐 거의 20여 일 동안 걷지를 못했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천천히 걸었다. 그래서일까. 더욱 설레는 마음이었다.한참을 무작정 걷다 어느 집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꽤 오래된 집이었고 전에도 여러 차례 왕래하던 길이었을 텐데, 이전 다른 때는 보지 못했던 걸 봤기 때문이다. 확실히 천천히 걷다 보니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빨간 벽돌 담벼락을 따라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어느 것은 아직 새싹이었고, 어느 것은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것 같았다. 하나같이 파릇한 녹색 잎이 강렬했다. 누군가 신경 써 키우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눈길을 사로잡은 건 화초들마다 손으로 직접 쓴 표지 말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관리에 대한 안내 표지 말이었다. 꽃 관리의 '정'은 '할아버지'이고, '부'는 '할머니'로 표시되어 있었다. 꽃 명과 단위, 수량까지 네모난 표를 만들어 상세하게 적어 두었다. 사실 도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렇게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혼잣말로 '도라지야, 너를 키우는 할아버지께서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네가 버릇이 없다고 생각하시니 더 잘 크렴'이라 말을 건넸다.그래도 도라지가 밉지는 않으셨나 보다. 다른 화초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옆으로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맞춤법 틀려서 더 정겨운 글씨... 나도 이렇게 늙고 싶다아마 할아버지 마음만은 청춘 아니었을까. 아직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옆지기 할머니를 향한 변치 않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지 않았을까.
South Africa Latest News, South Africa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노후에 살 만한 곳, '욜드'는 이런 고민을 합니다대부분 '살던 곳에서 살고 싶다'지만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 높아
Read more »
오세훈 시장 '한강 리버버스'의 실체... 이 계산 맞습니까?[그 정보가 알고 싶다] 10월부터 운항 예정...이용객과 비용 계산, 현실성 떨어져
Read more »
수익 극대화 위해? '부작용이 있는 약 계속 먹게 하라'[그 약이 알고 싶다] HIV 치료제 개발 뒤에 숨겨진 검은 속셈
Read more »
'의대 증원 회의록' 없다던 정부의 진짜 문제[그 정보가 알고 싶다] 국민들은 왜 '관전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나
Read more »
44년 만에 ‘사실’이 된 피해…1989년, 1996년에도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플랫]“검사도 그런 일을 당했다는데 나도 이제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Read more »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②] 1989년 전옥주도, 1996년 비구니 피해자도 말했다…협박·외면 딛고 44년 만에 ‘사실’이 된 피해“검사도 그런 일을 당했다는데 나도 이제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