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하승민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6800원 이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이민 간 지 1년 된 재일이 마리 앤더슨의 목숨을 구하는 대목이다. 앤더슨은 재일의 고등학교 동급생 루크의 엄마다. 미국 버지니아의 3만명 소도시 셰인빌. 한파로 셰인빌 호
지난 18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멜라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하승민 작가는 “다른 이를 핍박해도 되는 사회, 실용의 이름으로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너지는 사회다. 과거엔 부끄러워하기라도 했는데 이젠 부끄럽지도 않은 시대”라며 “글로 조금이나마 제동 걸 수 있으면, 동조하는 독자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출판 제공이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이민 간 지 1년 된 재일이 마리 앤더슨의 목숨을 구하는 대목이다. 앤더슨은 재일의 고등학교 동급생 루크의 엄마다.
가라앉고, 방향을 잃고, 겨우 정신 차려 수면을 향했을 땐 얼음장이 가로막았다. 폐가 수축됐다. 냉기, 희박한 산소, 무엇보다 폐쇄의 공포. 눈을 감았다 뜨면 어둠이고 수중이었으며 “단단한 얼음 천장” 아래였다. 문득 재일은 발버둥을 멈추고 “마침내 모두에게 공평한 순간을 맞이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손 닿을 듯 위로 ‘이웃’이 가물거렸을 테지만 제아무리 재간을 부릴지언정 출구 없어 닿을 수 없고 진입할 수 없는 세계, 저들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세계를 재일이 인식 넘어 체득하는 대목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재일은 죽지 않았다.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의식을 잃고서도 13분을 기적처럼 버틴 덕이었으니, 마치 재일과 같은 부류에 요구되는 생존의 조건 같다.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실상 앤더슨이 아들을 보낸 셰인빌고등학교는 저소득 가정 출신이 대부분이다. 부모 따라 미국 온 한국 아이들은 죄다 인근 사립학교로 간다.
근근이 히스패닉 여학생 셀마, 백인 가정의 또 다른 블루멜라닌인 클로이, 인종주의를 공부한 흑인 교장 리타 해먼이 재일에게 숨구멍이 되어준다. 하지만 재일이 클로이를 선망할 때 클로이는 “파란 아시아인”은 차라리 낫다며 “파란 백인”으로 불리는 자신의 처지를 더 비관하므로, 차별은 강제되어 ‘자기낙인’으로 완성되는 꼴이다. 그나마 자기 권리를 주장하던 클로이는 증오범죄의 희생자가 되고, 셀마는 죽을 뻔했으며, 리타 해먼 같은 ‘어른’은 학교 밖에서 만나기 어렵다. 재일은 베트남 엄마조차 왜 ‘멀쩡한’ 동생만 데리고 고향으로 갔는지 곱씹는다.
스무살 직전까지의 재일의 성장담은, 실상 차별의 메커니즘과 가공할 생명력을 보여주는, 혐오의 성장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설은 2020년대 전후 한국, 미국 등지에서 요동치는 파시즘, 당대 증오범죄, 근현대 차별의 역사가 쉴새 없이 교직하며 차별의 불멸성·확장성을 설파한다. 가령 수영장에서 쫓겨나는 재일에 1950~60년대 흑인이 들어간 수영장 물을 통째 갈거나 염산을 뿌린 실제 사건이 맞물리는 식이다. 때때로 소설이 지나치게 설명체가 되는 위험을 감수한 까닭이 있겠다. 하 작가는 당선 원고에서 50매 이상을 덜고 퇴고해 단행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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