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인데 식물 같은 생명체제철여름 초록빛의 속살은몸에 가득 쌓인 엽록소 때문이른 봄 잡은 것들은 연둣빛자연과 인간의 순환 깨우치다
자연과 인간의 순환 깨우치다 봄이 한창이다. 땅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던 파릇파릇함이 한 달 새 주변을 가득 채웠다. 저 파릇함을 보고 있노라면"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서정주의 시구가 떠오른다. 그만큼 가는 게 아쉬운 초록이고 가고 나면 또 오는 게 초록이다. 나는 초록의 광팬인데 관엽식물로 방을 꽉 채우고 산다. 초록이 없는 겨울의 스산함이 나이가 들수록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식물이 녹색인 이유는 식물이 가장 많이 반사하는 빛의 파장이 녹색이기 때문이다. 이것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 된 건 먼 옛날 모든 생명체가 바다에 살던 시절, 해수면에 닿은 빛 중 녹색 파장은 전부 조류들에 흡수되고 밑바닥까지 닿지 않아 원시 식물들이 녹색을 흡수하는 기제를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녹색 지구에 살게 되었다.
지난해 늦가을 지리산에 감을 따러 갔다. 내게 그림을 가르쳐주는 친한 동네 화가의 고향집이 지리산 밑에 있다. 그 형의 어릴 적 친구가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됐는데, 그 스님 절에 아주 큰 감나무가 있다. 해마다 우리는 그 나무 하나에서 대여섯 박스의 감을 따 곶감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그런데 감보다 더 나를 잡아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다슬기다. 지리산 맑은 계곡물이 잔잔해지고 넓어지는 함양 엄천강 기슭에는 다슬기들이 새까맣게 올라온다. 어린 시절을 떠올린 우리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다슬기 수경을 하나씩 사들고 잡기 시작했는데 한두 시간 만에 수북하게 잡을 수 있었다. 잡아온 다슬기를 물에 담그고 읍내에 사람을 만나러 나갔는데, 저녁에 돌아오니 고향집 연로하신 노친네 두 분이 다슬기들을 다 삶아서 까고 계셨다. 그때 바구니에 도톰하게 쌓여 있던 그 속살들의 초록초록함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양념장을 밥 위에 한술 얹어 먹는데 모래가 자글자글했다. 노인의 말인즉, 가을 다슬기는 모래를 먹어서 그렇단다. 봄 다슬기는 모래가 하나도 없다고. 그땐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 서걱거림은 어미 다슬기 배 속에 있던 새끼 다슬기들이었다. 다슬기는 새끼를 배 속에서 껍질이 자랄 때까지 키워 물속에 흩뿌리는 식으로 산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봄여름에 잡는가 보다. 다슬기 몸의 녹색 빛은 식물의 엽록소다. 바위에 붙어 물이끼를 주로 먹고 물속의 온갖 부유물을 먹고사는 다슬기의 몸엔 엽록소가 잔뜩 축적된다. 그런데 소화된 엽록소가 원래의 초록빛을 잃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는 게 내겐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슬기는 동물인 동시에 식물인 생명체인 것이 아닌가. 동물 중에서 자기 몸의 작용으로 초록빛을 만들어내는 생명체가 있었던가. 다슬기는 엽록소인 클로로필 성분을 비롯해 타우린, 칼슘, 마그네슘 등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고 단백질 함량도 높다. 같은 중량의 소고기보다 단백질이 많고 거의 녹용에 버금간다고 하니 고단백 식품이다. 게다가 식물 속의 엽록소는 사람 몸에 잘 흡수되기 힘들지만, 다슬기가 먹고 소화시킨 엽록소는 사람 몸에 잘 흡수된다 하니 이것은 발효와 그 원리가 같다. 된장이나 김치 같은 발효식품 또한 미생물이 먹고 소화시킨 좋은 성분들을 우리가 먹는 것이니 인체가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하다는 말이다.
며칠 전에도 경기도 연천 냇가로 다슬기를 잡으러 다녀왔다. 날이 좋은 날 가보니 물살이 적당한 얕은 여울목에 까만 점들이 가득 봄 마실을 나와 있었다. 그날도 한 되 정도 다슬기를 잡아왔는데 아직 4월이라 그런지 삶아놓은 다슬기 살들이 연둣빛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물속의 녹조류가 풍부하지 않을 때라 다슬기들이 충분히 먹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다슬기는 5월 말에서 6월이 제철이라고들 한다. 그때가 되면 그 영롱한 초록빛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슬기엔 좀 미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다슬기를 삶고 난 물에 된장을 풀고 아욱과 부추를 넣고 끓인 그 시원한 국물의 맛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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