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으로 승부 보려는 어떤 재판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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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으로 승부 보려는 어떤 재판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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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 흐름과 무관하게, 여전히 글의 길이와 기록의 무게로 경쟁하는 곳이 있다. 법조계다. 수사 기록의 분량이 방대할수록 중요한 사건으로, 제출하는 서면의 길이가 길수록 유능하고 성실한 변호사로 평가된다. 📝이혜온 (변호사)

글로 쓰인 콘텐츠는 영상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시대다. 그것도 짧은 영상과 글을 선호하는 이용자들을 위한 ‘숏폼’ 콘텐츠가 대세다. 바뀐 시대에 맞게 글쓰기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들 한다. 미국의 유명 미디어 스타트업 ‘악시오스’ 창업자들이 쓴 글쓰기 방법론 책 〈스마트 브레비티〉에 따르면, “간결은 자신감이다. 장황은 두려움이다”. “짧게, 하지만 얕지 않게”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게, 여전히 글의 길이와 기록의 무게로 경쟁하는 곳이 있다. 법조계다. 수사 기록의 분량이 방대할수록 중요한 사건으로, 제출하는 서면의 길이가 길수록 유능하고 성실한 변호사로 평가된다. 상대방이 수십 장에 달하는 서면을 내면 괴롭다. 중언부언하는 서면이라도 고객은 일단 분량에 기세가 압도되어 초조해한다. 장황함이 전략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법원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얼마 전에도 진행 중인 형사사건에서 수사 기록 복사비만 50만원 넘게 나왔다. 종이 기록은 그래도 싼 편이다. 2020년 ‘국회 신속처리안건 지정 충돌 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확보한 영상파일은 전체 용량이 3.78TB였고, 당시 검찰 증거 영상 복사 수수료 규정은 700MB당 5000원, 700MB 초과 시 350MB마다 2500원이어서 25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내야 할 판이었다고 한다. 피고인의 ‘돈’과 직결된 수사 기록 변호인단은 방어권 행사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법무부는 수수료 규정을 ‘법원 기준’으로 바꾸었다. 수수료가 7분의 1 정도로 낮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백만 원이다. 수사 기록 복사 비용은 돌려받을 방법도 없다. 무죄판결이 확정되면 국가는 재판에 든 여비나 변호사 보수 등 비용을 보상하지만, 수사 기록 복사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페이퍼리스 시대에 여전히 종이 복사만 가능한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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