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통해 누구의 의지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던 틀린 것이란 없고 행복해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지금처럼 극장이 그리 많지 않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지역 방송국의 공연장이나 시민회관이 영화관의 역할을 하곤 했다. KBS 부산홀이나 MBC 부산 방송국에서 종종 영화를 상영했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영화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시설은 아니라 상영 환경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때로는 좌석 중간에 설치된 간이 영사기가 맹렬한 소음을 뿜으며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10년을 넘게 가져온 꿈인 건 맞는데 막상 내가 재능은 있는지 이 일을 해서 행복하긴 할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선택의 시점 전까지는 막연한 꿈도 편하게 꿀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결정해야 할 때가 오자 아무리 오래된 희망이라도 쉽게 골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담보는 내 삶과 미래였다. 그때 처음으로 '이게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학교는 졸업했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맞지도 않는 험난한 영화 촬영 현장을 맴돌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소모되다 젊은 나이에 큰 병이라도 얻어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했지만 모두가 불행하게 살 필요는 없었다. 엄마도 나도.언젠가 영어 공부를 위한 모임에서 작문 주제로 '내가 마음에 드는 나의 성격'이 나온 적이 있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가 겁이 많은 게 좋다고 했다. 실로 나는 무서운 게 많다. 높은 게 무서워서 전망대도 잘 가지 않는다. 호러영화는 반드시 봐야 한다면 소리를 끄고 화면을 손가락 크기로 줄여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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