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운 | 이슈팀 기자 “죄송해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요… 제발 가 주세요.” 지난달 3일 아침,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여성은 한사코 취재를 거절했다. 입은 애써 미소 지었으나, 눈물 맺힌 눈 너머로는 어떤 단호함마
지난달 2일 오전 전날 시청역 교차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로 숨진 피해자들이 이송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 장례식장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3일 아침,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여성은 한사코 취재를 거절했다. 입은 애써 미소 지었으나, 눈물 맺힌 눈 너머로는 어떤 단호함마저 느껴졌다. 명함만 겨우 쥐여주고 빈소를 나오니 ‘다음 차례’를 노리는 기자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빈소 앞을 지키는 그의 직장 동료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쫓아냈다.그의 남편은 이틀 전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나오다, 갑자기 인도를 덮친 차량에 치여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로 불리는, 한순간에 아홉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였다. 그의 남편과 동료들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용역업체 주차요원으로 일했다. 연달아 있는 세 빈소에서 울음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빈소의 기억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도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젊은 남성이 지친 듯한 표정으로 빈소 앞에 진을 친 기자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그는 전날인 크리스마스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이의 처남이었다. 아랫집에서 난 불로 구조를 기다리던 그의 매형은, 결국 7개월 된 둘째를 안고 4층에서 뛰어내려 아이를 살리고 자신은 숨졌다. 딱한 사연에 기자들이 몰렸다. 유족들은 기자들이 조문객에게 말을 걸라치면 전속력으로 달려나가 막아섰다.죽음을 기록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 취재했던 여러 빈소에서, 나를 포함한 기자들은 당연하게도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 자체에 ‘현타’가 오곤 했다. ‘이건 일일 뿐이야’라며 자신을 다독인 적이 여러번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그 죽음의 이면을 정확히 짚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지난 6월24일 경기 화성시의 리튬전지 공장 ‘아리셀’에서 난 불로 노동자 22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유족·생존자 취재는 참사의 이면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먼 타국까지 와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들의 사연은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불법 고용과 안전교육 미비, 임금 체불 등을 드러냈다. 이중화된 노동구조 속 ‘위험의 이주화’가 화두가 되기도 했다.하지만 그런데도, 죽음을 기록하는 일의 ‘당위’와 ‘현실’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아리셀 참사에서 남편을 잃은 최현주 충북인뉴스 기자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다른 참사 유가족을 취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송 참사 유가족이 저한테 되게 냉소적이셨는데,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기사화되는 게 그분들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제야 그분들 심정을 알겠어요”라고 말했다.
시청역 역주행 참사 희생자들의 빈소가 마련됐던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은, 참사 불과 3주 전 나의 할아버지 빈소가 마련됐던 곳이기도 했다. 내가 밤을 지새웠던 장례식장 로비에서 울부짖고 있는 유족들을 보면서, 죽음을 기록하는 일을 다시 생각했다. 기록의 중요함을 되새기면서도, 그보다 먼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빈소 취재를 가야 될 것 같아.” 선배의 지시에 옷깃을 먼저 여미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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