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을씨년스럽다'고 묘사하며 힘든 한 해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꿈꾸는 옛날이야기에 대한 소개
을씨년 스럽다는 말이 있다.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나 사람이 가난한 모양을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에서 왔다고들 한다. 푸른 뱀의 해, 그러니까 2025년이 바로 을사년이다. 설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 을씨년 스럽다’는 말이 자리잡았다 하고, 다른 누군가 1785년 을사년 대기근 이후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뭐가 됐든, 푸른 뱀의 해에 나라가 망하거나 수많은 이들이 배곯아 스러졌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스며 있는 셈이다. 그리고 참 을씨년 스러운 세밑을 지나왔다.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의 측근은 체포영장 발부가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혹세무민하고, 무안공항에선 가족을 잃은 이들의 절규가 하늘과 땅을 울렸으며, 정당한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385일째 공장 옥상에서 생활하는 한국옵티컬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억울함은 뼈에 사무친다.
아직 을사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닌데, 이미 이 세계에서의 삶이 너무 빈한하여 더럭 겁이 난다. 그래서 새해 첫날인 오늘 아침엔 조용히 옛날이야기를 펼쳐보았다. 인간이란 지식은 쌓아가되 지혜는 쌓지 못하는 동물이라, 기술이 고도화되고 사회가 복잡해져 재난조차 복합적이 되어 버린 시대에도 여전히 선인들의 지혜가 우리를 숨 쉬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리하여 2025년을 여는 옛날이야기는 안젤러 카터의 에 수록돼 있는 수리남의 민담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 텐데, ‘손가락 벌리기’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엔 바야우라는 남자의 (이름도 없는) 두 아내가 등장한다. 두 아내라니. 벌써부터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젤라 카터는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쓴 민담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을 모아 두 권의 두꺼운 동화집으로 엮어내면서 이렇게 썼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공통점이 한 가지밖에 없다. 모두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근대국가 형성기에 민담 등의 수집이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그게 이야기의 힘이자 역할이기도 한 셈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동화의 여주인공을 찾아 책들을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건 똑같은 과정의 변주”라 말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성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읽는 것은 “과거의 내 몫에 대한 요구를 제기함으로써 미래의 공정한 몫에 대한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받고픈 바람”의 소산이었다. 여하튼, 바야우의 두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바야우는 먹을 것이 생기면 두 아내에게 가져다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들을 먹을 때는 손을 벌려야만 하오.” 첫째 아내는 남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먹을 것을 다 먹은 뒤 허공을 향해 손을 벌리곤 했다. 하지만 둘째 아내는 남편의 말을 달리 해석했다. “손을 벌려야 한다”는 말을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눠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던 것이다. 문화와 삶 구독 구독중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자 첫째 부인은 쫄쫄 굶어야 했다. 하지만 둘째 부인에게는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많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첫째 부인이 둘째 부인에게 그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허공에 대고 손을 벌렸기 때문에 무엇을 줄 상대는 허공밖에 없죠.” 참 험악한 한 해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에서, 남태령에서, 무안공항에서, 그리고 여기저기서 우리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을 벌리는 이들을 만났다. 2024년이 을씨년스럽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올해도 손가락을 벌려 서로를 만나기를. 해피 뉴이어, 여러분. 손희정 문화평론가 이웃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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