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제 목숨을 구했지만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두 형제의 이야기 이반의 형 막심은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동생의 목숨을 구한 뒤에도 부대원들과 함께 전쟁터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막심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청년 막심은 20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우다 결국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릴리야에게 바흐무트는 “지옥”이다. 이곳에서 아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지난해 막심과 이반 형제는 러시아의 침략이 본격화하자 군에 자원했다. 막심 나이 22살, 이반은 겨우 18살이었다.“형은 언제나 제 곁에, 저는 언제나 형 곁에 있었어요. 제게 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시간이 지나면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잘생긴 두 청년의 얼굴에선 순수함이 사라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이들은 마지막 순간 바흐무트에 있었다. 그곳에선 집집이 돌아다니며 잔혹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반은 “바흐무트에선 도저히 잘 수 없었다. 24시간 내내 공격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총을 재장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벽 뒤에서 섬광이 터졌고 그 즉시 몸이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땅으로 쓰러졌습니다.
막심은 긴급하게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 형제에게 오고 있던 의료진이 탄 차가 러시아 대전차 미사일에 맞았고, 의료진은 전원 사망했다. 이후 이반은 9시간이 지나서야 구조될 수 있었다.그렇게 일주일간 바흐무트에서 항전한 막심은 러시아 저격수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막심의 장례식은 조금 더 특별했다. 슬픔에 빠진 가족들은 물론 토마키우카 주민 전체가 나와 청년의 죽음을 슬퍼했다. 장례 행렬이 묘지로 향하는 길에 시민들은 무릎을 꿇고 애도를 표했다. 꽃을 움켜쥐거나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기도와 추모곡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지난 1년간 이반 형제의 부모인 세르히와 릴리야는 두 아들의 전투를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견뎠다. 이들 부부는 아들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제대로 자본 날이 없다. 언제나 아들들의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릴리야는 크 아들 막심의 관이 마침내 땅 속에 내려지기 전 울리는 예포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릴리야는 막심이 이반과 함께 떠날 수 있었으나, 결코 비슷한 나이의 경험이 적은 부대원들을 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이반, “형은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유는 피로서 쟁취되고요”이 작은 마을의 작은 묘지엔 새로 만들어져 꽃으로 장식된 묘지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막심의 장례식을 주관한 지역 신부 로만은 그 주에만 해도 군인 3명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