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천] 바다, 물고기, 사람에 관한 이야기
바다는 물기 어린 삶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난 사람도, 꿈을 찾아 뭍에서 온 사람도 기꺼이 품에 안았다. 뱃사람들이 비바람 맞고 파고를 넘으며 낚아 올린 싱싱한 날것들은 오랜 세월 우리네 밥상 한편을 지켜왔다. 허기진 배와 마음마저 든든히 채워주었다.
덕적도, 소야도, 문갑도, 선갑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등 덕적군도 섬의 근해는 풍요로운 바다 곳간이다. 그중에서도 덕적도 바다는 민어, 조기, 도미, 가자미, 새우, 농어 등 온갖 물고기로 황금 물결을 이룬다. 꽃게 어장으로 알려진 연평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잡이 어장이었다. 1930년대 연평도에는 주민 1000여 명이 살았는데, 4월부터 6월 조기잡이 철이면 뱃사람과 상인 2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연평도 파시는 1968년 5월을 마지막으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서해 최북단에 오롯이 핀 섬, 백령도. 6년 전, 그 섬에서 김호순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제주 바다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외지로 물질을 하러 나섰다. 백령도에는 35년 전 즈음 왔다.일본 어민들이 제주 어장을 빼앗으면서 1900년대 이후 해녀들은 고향 밖으로 물질을 갔다.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바다를 찾아 떠났다. '출향 해녀'다. 1927년 문예지 에 실린 김동환의 시 '월미도 해녀요'는 인천 앞바다에 해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한다.가난을 탓하지도, 지켜만 보지도 않았다. 척박한 환경을 기꺼이 끌어안고 평생을 스스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해녀다.
인천, 그 바다.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안강망 어업으로 황금 물결이 일렁였다. 생태 환경이 변하고 마구잡이로 그물을 던지면서 풍요롭던 바다는 메말라 갔다. 1970년대 이후엔 산업화의 거센 물결에 자리를 내어주고 검게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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