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모교로 돌아와 첫 수업을 앞둔 이지선 교수를 만나봤습니다.\r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혈중 알코올 농도 0.35%의 만취한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던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4학년 ‘이지선 학생’은 그날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고 당시 기준 안면장애와 지체장애 1급을 진단받았다. 2000년 7월 30일의 일이었다. 40번 이상의 대수술을 견뎌냈지만, 이전의 얼굴과 손가락은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23년, 1일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다. 이 교수는 ‘내가 받았던 도움만큼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며 전공을 바꿔 미국 보스턴대·컬럼비아대에서 재활상담학·사회복지학 석사를,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7년 한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첫 발을 뗐고, 23년 만에 모교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사고를 극복하고 꿈을 찾아간 과정을 담은 자전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 『꽤 괜찮은 해피엔딩』 등의 저자로도 유명하다.이지선 교수가 28일 오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 20230228
오랜만에 모교로 돌아왔다. 너무 하고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소원이었다. 지난 1월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다. 감격의 시간이었다. 23살 사고 이후 23년이 흘렀다. 첫번째 인생만큼 살아온 두번째 인생은 어땠나.덤으로 얻은 삶이 벌써 그만큼 됐다. 쉽진 않았으나, 남들 생각만큼 어렵고 힘들지만도 않았다. 하루하루가 선물이었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지금도 계속 수술을 받나.일주일 전에도 받았다. 얼굴 수술 자국이 오그라든 부위에 다리 피부를 떼서 정리하는 수술이었는데, 첫 수업 앞두고 또 수술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별 생각 말자!’ 하고 받아버렸다. 몇 번째 수술이었나.안 센 지 꽤 됐다. 40번쯤까지 세다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멈췄다. 마일리지가 쌓이는 것도 아닌데. 수술을 계속 한다는 건 내가 그만큼 건강하고, 수술해줄 의사도 있고, 더 쓰기 편한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니까 거기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지금도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자로만 불린다.피해자로 살아야 하는 명백한 순간과 시기가 있지만, 그 사람을 평생 피해자로 살지 않게 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역할 같다. 나도 매일 그런 도움을 받았다. 평생 내 간병인이 되어준 엄마, 가족들과 교회 집사님들이 그랬고, 한창 꾸미고 다닐 나이에 최대한 수수한 모습으로 병문안을 와준 속깊고 어렸던 나의 친구들이 그랬다. 한동안은 별로 안 친한 친구가 정기적으로 병문안을 왔는데, 할 말도 없으면서 자꾸 찾아오는 그 수고스러운 걸음과 눈빛에서 ‘네가 살아남았으면 좋겠어. 생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란 마음을 읽고 힘냈던 적도 있다. 그런 눈빛들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살았다. 사고와 잘 헤어지는 방법이 있을까.많은 학자들이 얘기하는 ‘다시 쓰기’다. 내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을 달리하면 사고의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 그 후에 내가 얻은 것들이 있다고 깨달으면 사고와 멀어질 수 있다.
사고의 생존자들에게.‘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을 거다. 동화 속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은 아닐지라도, 내 계획과는 다른 삶일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분명히 괜찮은 해피엔딩을 맞을 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결코 혼자 계시지 말 것. 누군가와 슬픔도 아픔도 함께 나누면서 사고와 잘 헤어지시기 바란다. ‘그게 될까’ 싶을 때면 저를 잠깐 떠올려봐주시라. 앞으로 만날 학생들에게.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너무 기대하지 말고. 사회복지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정답이 없다. 우리 같이 헤매고, 같이 배우고, 같이 답을 찾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학기를 마쳤을 때, 지식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사람으로, 이웃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배워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김정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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